2014년 10월 28일 화요일

오늘은 그녀를 알아보겠습니다

저는 좋아합니다 돈을

돈은 밥도 물도 심지어 공간까지 줄수 있지요

그 돈 한국에서는 수표를 제외하고 제일 높은 액수는

바로 5만원권 입니다

주황색에 만원보다는 약간 작은듯한느낌 은행에서 받은지 얼마 안된 지폐에서는

윤기마저 흐르는듯합니다



그 5만원에 그려져있는 인물

신 사 임 당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년 12월 5일(음력 10월 29일) ~ 1551년 6월 20일(음력 5월 17일)) 또는 사임당 신씨(師任堂申氏)는 조선 시대 중기의 문인이자 유학자, 화가, 작가, 시인이었다. 조선시대 중기의 성리학자 겸 정치인 율곡 이이, 화가이매창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본명은 인선(仁善)으로 사임당은 그의 당호(堂號)이다.
외할아버지 이사온과, 기묘사화로 관직을 단념하고 향리에 은거한 아버지 신명화로부터 성리학을 교육받았으며, 아버지가 아들없이 죽자 경기도 파주의 시댁과 강원도 강릉의 친정집을 오가면서 친정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어린 자녀들을 두고 일찍 병사하였지만 아들 이이는 대학자이자 정치인으로, 딸 이매창과 아들 이우 등은 문인 화가로 명성을 날렸다. 동시대의 여성인 문정왕후정난정황진이 등과 비교되면서 생전에도 부덕과 현모양처의 상징으로 존경받았고, 사후에도 아들 율곡 이이의 정치적, 학문적 대성으로 존경하는 어머니상의 전형으로 길이 추앙되었다.
그림, 서예, 시 재주가 탁월하였고, 성리학적 소양도 있었으며, 십자수와 옷감 제작에도 능했다. 성리학적 지식과 도학, 문장, 고전, 역사 지식 등에 해박하였다. 태교에서부터 정성을 기울여 아들 주나라 문왕을 얻은 현숙한 부인 태임(太任)을 본받는다는 의미에서 사임당(師任堂)으로 아호를 정하였다. 별호는 인임당(姻姙堂) 또는 임사제(姙師齊)이다.
2007년 한국 여성계의 반대와 집단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의해 5만원권 지폐의 주인공으로 전격 도안되었다.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은 그의 9촌 조카였고, 대한민국의 정치인 해공 신익희는 14대 방손이 된다.
-출처 : 위키피디아

제 기억에 신사임당 하면 관련 이미지가 

옷에 포도를 그리는 이미지가 떠오르네요
좌:묵포도도 우:초충도 수병의 가지그림 
그리고 율곡 이이
신사임당의 3번째 아들

첩실 권씨부인은....
온후하고 자상한 어머니였던 신사임당과는 달리 권씨 부인은 술을 무척 좋아해서 새벽부터 술을 몇 잔 마셔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는 성격이었고, 조금만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있어도 빈 독에 머리를 박고 엉엉 울어댄다든가 노끈으로 자살 소등을 벌이는 등 행패가 심하였다.[5] 자녀들이 당하는 고통은 말이 아니었다.[5] 참다못한 이이는 가출을 감행할 정도였다

출처 - 위키피디아

대단하네요 신사임당의 고단한 삶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신사임당의 결혼생활은 ...

남편의 외도[편집]

신사임당은 남편 이원수에게 아버지 신명화처럼 자상하고 인자한 태도를 기대하고 있었을 테지만, 그녀는 남편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시련과 정신적 고통을 당하게 된다.[18] 그리고 남편에게 다른 여인이 생겨 방을 따로 얻은 것이다. 남편 이원수가 첩을 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일시적으로 충격을 받기도 했다.
아버지 신명화는 평생 한양과 강릉을 오가면서 부인과 생활을 했지만, 주변에 여인이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였고, 그의 외할아버지 이사온 역시 마찬가지로 그런 일 없이 평생을 살았다.[19] 때문에 남편의 외도는 신사임당에게 예기치 못했던 청천벽력과 같은 사건이었다.[19] 결국 남편 이원수는 외도에서 끝내지 않고, 첩을 한명 들이게 된다. 그러나 남편이 들인 첩 권씨는 술주정과 행패가 심하였다
출처 - 위키피디아


신사임당하면 떠오르는 말은 역시 현.모.양.처

저는 술마시면서 가끔 하던말이 "나는 현모양처와 결혼할꺼야" 였습니다만

현재는 "결혼 할수 있을까?"로 변했네요 

어쩌다 이렇게되었을까요 ㅋㅋ  어쨋든 오늘은 10월29일 음력이었다면 신사임당의 생일이네요

5만원권 보고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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